독서 기록

파우스트 박사 10 (feat. 25장)

Christi-Moon 2023. 6. 24. 19:54

아드리안과 악마와의 만남이 멋지게 <파우스트 박사> 1권 끝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25장을 두세 번 읽어도 일관성 있게 정리가 안된다. 추측컨대 이 대화가 아드리안의 내면에서 나왔기 때문에 복잡한 그의 내면과 혼란한 정신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좀 산만할 수 있으나 악마의 생각과 그의 의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드리안과 악마의 대화에서 나온 것들 중에 모래시계와 시간에 대한 거래, 그리고 매독균이 환각증세를 일으키고 그것이 기민한 사람에게는 신이 지닌 창조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악마와 천사는 종이 한 장 차이이고, 아드리안에게 악마가 엄격한 금욕 생활을 요구한 것들이 흥미로왔다. 특히 악마가 말하는 지옥은 이제부터 아드리안이 겪게 될 곳이며, 그 지옥은 아드리안에게  신적인 창조성을 부여해 주고 피조물을 완성해 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천당과 지옥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지옥은 말로 표현될 수 없고, 존재하기는 하되 신문에 보도하듯이 알릴 수 없고, 존재하기는 하되 신문에 보도하듯일 알릴 수 없고... 따라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지옥의 은밀한 쾌감과 확실성이지...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상징적인 표현에 만족해야 하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중단되니까... 그 어떤 자비나 은총 혹은 보살핌도 효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거야...'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그럴 수는 없다.'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지막 의욕마저 사라져 버리지... 설명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비밀의 베일에 싸여 그 세계가 "아마도 도래할 것'이라는 짐작조차도 그 정도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정적 속에서 비명과 하소연, 사나운 포효나 신음 소리... 고문의 신음과 애원하는 소리 등이 귀청이 떨어질 듯 크게 울리겠지... 그러니까 아무도 자기 자신의 노랫소리는 들을 수 없을 거야... 지옥의 환락을 맛보려면 견디기 힘든 수난도 하찮게 여겨야 하고 손가락질과 야유도 감수해야 되니까. 그래서 저주받은 자들은 고통뿐 아니라 비웃음가 치욕도 견뎌야 한다는 설이 생겨난 거야. 지옥이라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고통과 치욕의 끔찍한 결합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삶의 연장일 뿐이지

 

이 악마가 말하는 지옥은 결론적으로 아드리안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경험해야 되는 세상인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주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지옥이다. 그러나 창조성은 그 극단에서만 싹 틀 수 있다는 것을 악마는  말한다. 지옥도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는 지옥을 만약 스스로 의지를 통해서 선택했다면 그것은 신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고행과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 박힌 일들은 그들의 의지로 지옥을 감내한 것이다.

 

지옥은 자네한테 전혀 생소한 게 아니야. 오히려 어느 정도 친숙한 것일  뿐이야... 근본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삶의 연장일 뿐이지. 단 두 마디로 말하자면 지옥의 본질 속의 핵심이란, 그곳의 거주자들에게 오직 극단적인 냉기 아니면 화강함을 녹일 정도의 열기 중에서 양자 택일하는 것만이 허용된다는 사실이야. 그들은 이 두 가지 상황 사이에서 울부짖으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지. 어느 한쪽에만 있으면 다른 한쪽은 언제나 천국의 위안처럼 보이니까. 그렇지만 견디기 힘들게 지독하기는 마찬가지야. 이러한 극단의 상태가 자네 마음에 들 거야.

 




아드리안은 양 극단을 추구하면서 왔다.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과 극단인, 원초적인 야만성을 지니려고 몸부림을 친 것이다. 악마로서는 지옥으로 불러들이기에 용이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악마는 그에게 에스메랄다를 이용하여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두뇌의 최음 상태에 빠지게 하고 매독에 걸리게 한 것이다. 이 매독은 성병이나 감염병 차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악마는 설명한다. 또 이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아무나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성향과 이 미생물인 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마음상태가 된 뇌에서 고차원으로 넘어간다고 이야기한다. 터무니없이 들리지 않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매독에 걸린 예술가들 중에 신적인 창조성을 발휘한 인물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넨 지옥과 관계를 맺지 않은 천재가 있다고 믿나? 천만에! 예술가는 범법자와 광인의 형제야. 범법자와 미치광이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일찍이 그럴싸한 예술 작품이 나온 적이 있다고 생각하나? 병적인 것은 무엇이고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병적인 것이 없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악마도 맥을 못 춘단 말이야.

 

악마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결국 천사와 악마는 하나일 수 있다는 것에 귀결된다. 아드리안에게 있어 악마란 창조성의 거대한 힘을 제공하는 수호천사이기도 하다. 악마는 파괴의 속성을 천사는 창조의 힘 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악마의 본질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만 작동해서 파괴를 일삼는 속성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극단적인 삶을 선택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그 힘을 부추기는 것이 결국 악마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부추겼던 힘은 그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악마는 천사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극복하는  강인한 힘을 가지게 하는 것은 악마성이다. 이 악마성을 가져야만 천사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악마는 아드리안에게 결국 그것을 요구한 것이다. 지옥의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있는 아드리안의 위대한 음악은 지옥을 거쳐 창조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드리안에게 악마는 고난과 역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성인들처럼 지옥의 불구덩이로 뛰어들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것은 악마적 용어로 악마의 '유혹'이지만 악마는 아드리안 내면에서 나온 것이기에, 아드리안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