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파우스트 박사9(feat. 24장&25장)

Christi-Moon 2023. 6. 22. 16:02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1부  끝 25장, 악마와 대면한 날의 기록까지 읽었다. 1부의 이제껏 이야기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극적긴장감을 가지고 달려온 것 같다.  모든 장이 차곡차곡 쌓여 아드리안 내면의 욕망과 의지가, 악마와의 대화로 까지 나타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와 대화한 아드리안의 기록은 아드리안의 음악에 대한 예술적 욕망에 대한 의지의 발현의 결과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진실로 악마와 대화를 나눈 것인지  두 가지다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생생하고 소름 돋는다. 
 

그런데 아드리안의 목소리뿐일까? 사실 여기에 공개하려는 것은 둘의 대화이다. 완전히 다른 존재 엄청나게 다룬 존재이며 대화의 기록자인 아드리안은 그 다른 존재로부터 들은 것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또한 그가 보고 들은 것을, 그가 그것을 보고 듣는 동안이나 나중에 기록을 하면서 진심으로 실제 사실이라고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드리안 자신이 상대방이 실재하는 존재라는 것을, 조건부의 가능성이긴 하지만 문서에서 인정하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드리안이 기록한 상대방의 냉소적 태도와 비웃음과 속임수 까지도 시련을 겪고 있는 당사자인 아드리안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한 심정이다. 

 
아드리안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즉  하나의 현상이 상반되는 관점에서 읽힐 수 있고, 두 관점은 곧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화자와의 대화에서 던져준다. 현실 세상의 눈으로 아드리안으로 보는 독자들은 정신 분열을 일으켜 미쳤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야말로 악마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드리안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 독자도 있으리라. 우리가 가능한 세상이 존재한다면 가능하지 않은 세상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드리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재미있는 사실은 24장을 읽다보면 아드리안이 악마와 대면할 수 있는 최적화된 공간에서 그 만남이 성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심코 읽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다시 읽다 보니 그 이야기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아드리안이 악마를 만난 이곳은 악마가 지낼 수 있는 환경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가 오페라 작업을 하기 위해 머문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는 이탈리아 작곡가가 태어난 이름을 지명으로 택한 곳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이와 비슷한 이름의 장소로 언급되던 곳이었다. 고대 유적지로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아드리안은 번역가인 쉴트크납과 페로넬라 라는 미망인 가족이 사는 마나르디 가에서 함께 머물렀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그 집에 머문 러시아 백작이, 자신의 침실에 들어오는 귀신에게 총을 쏘아 대곤 했다는 이야기와 그 이후로 약간 모자라는 듯한 마나르디의 딸 아멜리아는 귀신이야? 귀신이야?라고 끊임없이 물으면서 다니는 그런 분위기를 지닌 집으로 봐서 심상치 않음이 깔려있다. 24장에서 묘사된 내용은 으스스하고 곧 뭔가 일어날 거 같은 분위기로 조성된다. 또 아이러니한 것은 이 집 여주인 마나르디는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풍족하게  무한정으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간과할 수 없었던 점은  식사가 거의 육류 위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뭔가 희생과 제물 의식에 사용하는 동물로 느껴졌다. 반면에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첫 장면을 보면 새로 이사한 집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식사 타임은 부덴브로크 가의 본격적인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어쩌면 미망인 여주인의 식욕은  본능적 욕망의 억누름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풍족한 음식의 대접은 어느 누구라도 이 집으로 초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악마도 초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벌써 자양분이 많은 야채수프, 작은 새 고기를 곁들인 옥수수 죽, 마르살라 산 조가비, 양고기 요리, 달게 양념한 멧돼지 고기에 샐러드 치즈, 과일 등을 실컷 먹고 진한 커피를 마시며 담뱃불을 붙일 즈음이면 그녀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며 훌륭한 착상이라는 듯한 어조로 "여러분 이제 생선 좀 드시겠어요?라고 물어 올 정도였던 것이다. 

 
또 마나르디의 두 남자 형제들 중 한 명은 보수적이고 한 명은 자유롭고 비판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두 극단적인 성향을 아드리안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 속 두 형제 기질에 대해 설명한 글은, 아드리안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와도 그 흐름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아드리안이 대면하는 악마는 곧바로 아드리안의 자신이고 하나이며, 보통 사람처럼  편향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분리될 수 없는 천재 예술가의 기질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가나 다름없는 이 변호사 영감을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육까지 받은 가족 구성원에 대한 농사꾼의 묘한 반감이 이런 일로 좋은 구실을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형제의 세계관 역시 여려 면에서 서로 대립했다. 즉 변호사 영감은 비교적 보수적이고 권위를 존중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반면에 알폰소는 소위 자유롭고 비판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교회와 군주제, 그리고 정부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아드리안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사랑의 헛수고"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작곡하는 아드리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통과 새로운 것에 대한 결합, 이성과 야만성의 조화, 상식을 뛰어넘어 비 상식을 상식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능력, 유머와 그로테스크한 이질적인 분위기의 적절한 배분, 유기적으로 세밀한 흐름의 연결성은 무겁지 않고 재기 발랄하게  작품속에 녹아들었고 황홀감과 깊이를 지닌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다. 이 곡을 가만히 들어 보면 감탄과 비애의 감정이 묘하게 교차된다. 가슴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감탄과 '얼마나 비장한가!라는 탄식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기지가 넘치면서도 비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작품은 쾌활한 트라베스타 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히 영웅적이라 할 만큼 절박한 곤경에서 길어 올린 지적인 성과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불가능의 한계에 도전해 끊임없는 긴장 속에 온갖 모험을 감수하는 예술적 유희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고통스러울 만큼 긴장된 사랑, 나는 이 살의 감정으로 아드리안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우리가 들었던 그 작품과 완벽한 교감을 하면서 감동에 젖어든 나는 한참 후에 저녁 식탁에서도 거의 감각이 마비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여주인이 "마셔요, 마셔" 라며 나에게 잔을 권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유령? 유령?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1부 25장의 악마와의 만남 이후에 작곡된 것이다. 아드리안이 이 작품을 작곡하기 전, 창조에 대한 욕망은 극에 달하게 되고, 이 창조에 대한 갈망도 ,욕망도  결국 악마와의  만남에 형태로 발현하게 된 것이다. 아드리안은 25장의 악마와의 약속했듯이  철저히 금욕을 실천했다.  아드리안의 가치관으로 이해하자면 철저한 금욕은 어쩌면 완벽한 야만성을 불러 일을 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일 수 있다. 이 아드리안이 머물고 있는 집의 기운까지 그것을 도왔으니까 말이다. 왜냐하면 이 집에 사는 모두가 '본능'과는 거리가 먼 생활들을 하고 있다. 강한 결핍은 그 반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에너지를 작동시켜 그 결핍을 어떡하든 채우려고 작동한다. 삶이 그러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드리안의 음악을 향한 욕망과 집착은 완전한 예술세계의 창조와 더불어 자신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보통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미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 신의 창조력을 부여받기 원해서 말이다. 토마스 만도 악마와 대화해 본 것이 아닐까.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이것을 부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