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파우스트 박사 11 (feat. 육체와 정신)

Christi-Moon 2023. 6. 29. 13:12

휴가 차 경주를 가는 SRT에서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2권을 읽으려고 가방에 챙긴다는 것이 그만 1권을 넣어 가지고 왔다. 그래서 글을 정리할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다시 읽어 보던 중 25장에서 악마가 드러나지만 이미 그 앞 장에서 이미 악마의 기운이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와서 아드리안과 무의식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는 곧 천사와 동전 양면과 다를 바 없다는 설득력에 방점을 찍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토마스 만은 그런 것을 옹호한 인물을 특이한 외모에 대해 섬세한 묘사까지 하고 있는데, 아드리안이 할레 대학에서 들은 ‘종교 심리학’을 강의한 슐렘푸스 강사였다. 그는 뭔가 마술사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에버하르트 슐렙푸스라는 강사였는데  당시 그는 두 학기 동안 할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는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지만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키가 작은 편으로 왜소한 체격에 목언저리를 금속 단추로 채운 검은 케이프를 외투 대신 걸치고 다녔다. 그 밖에도 그는 예수회 수도사들이 쓰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둘둘 말린 테두리가 달린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실제로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걸었던 것 같지만 확길치는 않다.


슐렙푸스 강의 내용은 학생들에게 호불호가 갈렸지만, 신학과 관련된 악마적인 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강사였다. 그가 주장하는 악인은 신이 신성한 모습으로 존재할수록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며 꼭 붙어있는 부속물이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덕과 악덕은 한쌍이고, 악덕은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며, 신은  인간과 천사에게서 자유를  주었는데 그 자유가 선한 의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고 준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즉 선으로부터 많은 악이 발생하는데, 악이 발생하는 것을 신이 저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선을 막아서 악을 보여주는 모순을 신이 자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6장에 악마는 아드리안이 성교를 통해 얻은 ‘매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근거가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읽어보니 13장에  바로 그 내용을 이미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미치는 악마의 힘이 언급될 때마다 성적인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고전적 심리학에서 성적 영역은 악마에게 유리한 시합장이었고, 하느님의 반대편, 즉 적과 유혹자에게 주어진 영역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의 다른 어떤 행위보다 성교에 대해 마녀의 세력을 더 크게 용인했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욕망이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이것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크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크고 육체의 욕망은 반대로 정신 작용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욕망은 매독이라는 균으로도 발현된다. 그것은 정신의 환각증세를 불러일으킨다. 그 환각 증세로 악마를 대면할 수 있으며, 아드리안이 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그것은 파국을 맞이할 전조 현상이며, 그 파국이란 어느 하나를 파괴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매독에 걸린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성욕의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육체를 지상의 다른 모든 재료의 결합보다 고귀하다고 여겼을 것이며, 영적인 것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에서 나타나는 육체의 우월성을, 물질적인 서열 가운데 차지 하는 높은 지위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육체는 공포와 분노 때문에 식기도 하고 뜨거워지기도 하며... 단지 메스꺼운 생각만 해도 부패한 음식물을 먹은 것과 같은 심리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육체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는 영적인 능력에 대한 통찰로부터... 다른 사람의 영혼 역시... 악마를 통해서, 타인의 육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는데 불과 한 걸음의 차이 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신이 육체 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의식 작용을 깨부수어 주었다. 정신과 육체는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정신 보다 육체가 우위에 있는 것 같다. 수면이 부족하면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고 의지는 온데 간데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파우스트 박사>를 읽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 여겨지지만, 하나의 현상으로만 비치더라도, 높이 평가하는 것과 그것을 터부시 하고 폄하하는 면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새겨두고 싶었다. 어떤 하나를 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 결핍을 계속 느끼고 그것에만 매달려서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집착하면, 욕망으로 변하고 그것이 강해지면 그것과 쌍을 이루는 반대 현상으로 이동해, 주위의 것들을 파괴시키고 자기 자신을 파괴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집착하고 욕망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곧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것도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리면 무지한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이며 그것을 깨 줄 수 있는 것은 독서뿐이 없다는 생각이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를 만나면서 더 명확해졌다. 그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