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스페인 여행 기록

Christi-Moon 2023. 4. 13. 14:21

돈키호테를 5년 전쯤에 읽고 세르반테스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영문본 돈키호테를 매일 한 장씩 읽고 있다. 매일 한 장씩만 읽으니 지금껏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아직 읽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2022년 가을 40일간 스페인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스페인 여행을 결심하게 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돈키호테의 나라이기도했고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돈키호테 동상을 보고 싶었다.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

 


돈키호테와 산쵸 세르반테스 조각상  사진을 찍고 한참을 조각상 앞에 서있었다. 돈키호테의 갑옷은 낡아 돈키호테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돈키호테가 타고 있는 말 로시난테는  돈키로테와 한 몸이다. 무서워서 달아나고 때로는 무참히 상처 입는 로시난테는 조각상에서도 짠함이
느껴졌다. 이런 로시난테가 있었기에 돈키호테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산초, 돈키호테의 분신이다. 동시에 돈키호테에게서 삶의 진리를 배우는 제자이다. 그러 나 그런 스승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전혀 조합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의지하고 서로 위로하는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그 둘에게는 상당한 신뢰가 깔려 있다. 미친 돈키호테의 행동에 대해서 저항을 느껴 달아나고 숨으려 할 때도 있지만 나름 아랫사람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산초다. 빼빼 마르고 길쭉한 돈키호테와 뚱뚱하고 짝다리 만한 산초의 대비가 재미있고 정겹다. 비주얼로도 최강 커플임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 위 조각상을 보면서 그의 오른 팔이 처음에는 앞으로 나가자, 전지하자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좀 더 보고 있으니 다르게 전해졌다. 그 오른팔이 힘찬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뻗은 오른손은 앞으로 뻗어 있지만, 이루기 어려운 꿈을 잡으려는 느낌이 들었고, 반면에 왼손에 든 창은 돈키호테의 곧은 마음, 지조 아니면 대쪽 같은 의지, 곧 전진하겠다는 도전의 힘이 느껴졌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팔이 이상이고 어느 팔이 현실일까? 오른쪽이 현실이고 왼쪽이 이상을 꿈꾸는 것일까? 아니면 왼쪽이 현실이고 오른쪽이 이상을 꿈꾸는 것인가? 나중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창을 든 왼손의 의지가 이상이고,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오른 팔이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전진하려는 의지를 내는 왼쪽이 현실이지만 결국은 잡을 수 없는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 오른쪽인지 모호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상과 현실을 각각 양쪽에 따로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두 쪽 다 이런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멋진 조각상이다. 세르반테스의 글처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달려보지만  늘 우리는 원하는 만큼 살면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에 좌절해서 포기하거나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안주하거나 아니면 다시 도전하거나 아니면 그것으로도 만족하거나. 설사 이룬다고 해도 그것에 끝이 없음을 시간이 지나 보면, 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열정을 가지고 도전에 대한 의지로 불타오르며 갈망하나, 결국은 그것이 어쩌면 집착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돈키호테 2부에서의 주제가 이것이다.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 구별이 안 간다. 1부를 쓰고 10년 후가 지나 쓴 2부는 세르반테스가 죽기 직전에 완성됐다. 2부에서는 1부와 달리 이제껏 돈키호테의 모험이 결국 꿈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을 자며 꾼 꿈은  깨어나보면  아무런 가치도 그 어떤 힘도 지니지 않는다. 살면서 얻고자 하는 명성, 부, 직위, 권력... 설사 이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 직전에  돌이켜 본다면,  그것은 꿈을 꾼 거나 마찬가지로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실체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삶이라는 꿈을 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세르반테스는 인간의 삶을 돈키호테를 통해  한마디로 '일장춘몽'과 다를 바 없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돈키호테의 조각상은 돈키호테를 사랑하고 그 작품을 깊이 통찰하고 있는 작가가 만든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저 조각상 하나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온전히 전달해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