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은 집요하고 주도면밀하고 세밀하며 관찰력이 탁월하게 뛰어난 작가이다. 그의 글에 반했다. 한마디로 뇌섹남이다. 토마스 만과의 인연은, 올해 2월 비엔나 여행 계획을 짜면서 대학시절 연극사에 배웠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왕실 극장“Burgtheater(부르크 극장) 토마스만 <마의 산>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이다. 그래서 미리 예매를 온라인으로 하고 갔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그 동시대에 살았던, 토마스 만의 작품이 궁금했다. 2018년 베를린 여행에서도 토마스만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 극장이 있었다. 그때 토마스 만도 희곡 작품이 있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쳤다.
관람하지 않았다. 역시 알아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맞다. 그때 토마스 만의 가치에 무지했다.
아무튼 여행 가기 전 서점에서 <마의 산>을 주문하고 읽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두터운 두 권의 양장본인 것도 놀라운데, 그것은 둘째치고 읽는데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소설이 아니라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면 이 정도 방대한 지식과 지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마의 산>은 기본적인 독서력이 없으면 쉽지 않다. 그리고 한번 읽어서는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출국 전 다 읽지 못하고, 여행 짐에 부피와 무게감 있는 양장본은 놔두고 다시 e-Book을 다운로드해서 갔다. 여행 중 최선을 다해서 읽으려고. 그리고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연극으로 어떻게 압축시켜 공연으로 보여 줄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일어를 모르지 민 빈 관객처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기립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엄지 척‘이다.
모든 현상과 사물의 이중적 함의에 대한 인식, 이분법으로 규정지어 사고하는 습관적 틀에 대한 자각, 시간에 대한 남 다른 시각과 통찰, 죽음을 통한 현재 삶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등. 소설 속 다양한 철학적 메시지들이, 무대와 배우 연기가 어우러져 함축적으로 잘 전달되었다.
‘마의 산’을 상징하는 무대세트는, 고도의 조명기술을 통해 뛰어난 입체감과 다양한 분위기를 선사했고, ‘산’의 세트는 스크린으로도 쓰여,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극적장치 기능으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리고 무대 위 인물들 대사와 영상 속 인물들 대사는 거의 립싱크로율 100%였으며, 성별을 넘나드는 일인 다역 연기와 영상에서 보이는 디테일한 배우들 표정까지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배우들 겁나 연습 많이 했겠구나 싶었다.
수준 높은 공연을, 발코니 자리여서 정면으로 볼 수 없었던 점, 책을 다 읽지 못하고 공연을 관람한 점 등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귀국 전 다시 한번 재 관람하기 위해 극장으로 갔지만, 그날 공연은 취소되었다. 그 시기에 다른 공연도 취소되고, 대체 공연으로 채워지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부르크 극장서 공연하는 배우들 중 코로나 확진자가 있었던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독일 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 만에 빠져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뇌섹작가의 생각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픈 갈망이 생긴다. <마의 산>에 이어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들을 읽었고, 다른 장편 소설들을 읽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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