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혼자 다니기 시작한 초반에는 여행지 맛집 블로그를 알아보고 그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블로그 추천 맛집들은 손님들이 많고 명성에 비해서 가격은 싸지 않고 맛의 질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구글 평점을 신뢰하다가 그 또한 작년 스페인 40일 여행에서 환상이 깨졌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현지의 건강한 음식을 싸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은 대형마트에 우리나라 보다 싼 과일 야채 특히 마트에서 파는 빵은 무엇보다 질이 좋고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여행지 마트에서 충분히 싸고 건강한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숙소 예약이 완료되면 주위의 대형 마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제대로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 여행 후반쯤 와서부터이다. 스페인 전 여행지였던 스톡홀름 까지는 구글 평점을 보고 찾은 식당들에 만족했었다. 스톡홀름 식당들 대부분이 맛있었고 깨끗했다. 특히 미술관 내 레스토랑 음식들이 가격대비 상당히 맛있었다.
스톡홀름은 해안가라 특히 구글 평점 높은 초밥집이 많다. 한국 초밥집 보다 가격이 싸고 무엇보다 질이 좋아 보였다. 나는 채식 위주 식사를 하기에 채식 초밥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모두 다 성공이었다.
구글 평점의 신뢰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 여행 초반부, 구글 평점 좋은 바르셀로나 파에야 식당에서 식사한 후 부터다. 거기는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튀김 냄새가 식당 내부에 배어있어 쾌적하지 않았다. 음식 맛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거기까지 참아줄 만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후 들어간 화장실에 조금 과장해서 손바닥 만한 바퀴벌레가 죽어 누워 있었다. 화장실을 보면 그 식당 조리 청결을 짐작할 수 있다는데, 거기 다녀온 이후 그날 속이 메스껍고 개운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여행지 맛집 투어에 대한 생각에 다른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실패에서 지혜를 얻는다는 말이 여기도 적용되는가 보다. 그날 이후로 숙소 근처 마트를 검색해 보고 규모가 크고 깨끗한 마트를 골라, 거기서 파는 과일과 깨끗하게 씻으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야채, 그리고 견과류 통밀빵을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돈도 절약되고 건강도 더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혼자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뭔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페인 여행도 모두 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대부분 구글 평점을 보고 간 식당들이 실망을 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두 곳이 있었다. 이 두 곳은 내가 가겠다고 결정하고 간 곳이 아니라, 우연하게 들렀던 곳이다. 바르셀로나 여행 막바지에 그날 유난히 좀 날씨가 스산해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도시 건축물을 보다가 아시아 식당을 검색해 보니 티베트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당시 현재 내가 위치한 곳 근거리에 그 식당이 있었다.
그 시기 달라이 라마 관련 책을 저녁 숙소에서 읽고 있었고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게 된 바로 그 시점에 우연 아닌 우연으로 티베트식당을 가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달라이 라마의 영성이 혼자 여행온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곳까지 그 힘이 닿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보통은 혼자온 손님이라면 대부분 유럽 여행지에서 넓은 좌석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티베트 주인(매니저 아님 주인인 듯)이 나를 보더니 처음에는 안쪽으로 안내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는지 창가 밝은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티베트 종업원으로 보이는 분이 나와 친절하게 서빙을 했고, 따뜻한 밥과 채식요리는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건강한 음식을 먹은 후 기분 좋게 계산하고 나와 그날 하루 마음이 따스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스페인 마지막 방문 도시 사라고사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였다. 아침을 먹기로 한 채식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고, 주위 식당이 없는 데다가 배는 고팠다. 그런데 길 건너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검색해 보니 평점은 좋았지만 리뷰수는 적었다. 딱히 대안이 없어 대충 때우기 위해 들어갔다. 아니 그런데 거기서 인생 초코레타를(우리나라에서는 코코아라고 불리는) 맛보았다.
추로스와 빵까지 5유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 마지막날 바르셀로나 공항 가기 위해 짐을 다 챙긴 후 이 카페에 이른 아침 또 한 번 들렸다. 좁은 장소였지만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와 줄까지 섰다. 동네 맛집이었던 것이다. 스페인 아줌마 두 분이 오후 두 시 반까지 운영하며 주로 동네 사람들이 빵을 사가는 곳이었다. 여행자가 찾기 어려운 그곳을 알게 되어서 기분 좋았다. 스페인 여행 추억을 떠올릴 때 이곳이 제일 먼저 생각날 거 같다. 사라고사를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여기 초코레타를 맛봐도 좋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니 몰랐던 것들을 하나 둘 알게 되어 좋다.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여행을 통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들은 별이 되어 오래도록 내 삶속에 빛나고 있기에 감사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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