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깊이가 있는 사람, 예술의 깊이가 있는 사람, 삶의 깊이가 있는 사람. 우리는 뭔가 깊이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럼 깊이 있다는 것은 위로 뻗어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아래로 깊숙하다는 의미인가. 건물을 높이 올리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땅 밑을 깊이 더 파야만 한다. 높이 세우고 싶다면 더 아래로 깊이 파였지만 비로소 안정감과 균형감이 생긴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깊이가 있으려면 결국 기본기가 튼튼해야 된다는 말과 일치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진통제만 먹어도 감기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감기에 자주 걸리고, 걸려도 잘 낮지 않고 회복 속도가 느리다면 즉 몸에 병이 깊어지면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간구해야만 한다. 병의 진행을 막기 위해 몸을 잘 돌보고 충분한 수면과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약을 먹는 것이 간단하고 약물 치료로 빠른 시간에 치료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약의 복용은 짧은 시간으로 잠시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있다. 좀 더 자신의 의지로 몸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을 위한 기본적인 원칙을 지켜 실천해야 한다.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가공식품을 먹지 말아야 하는 등 단순하고 뻔한 것 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 단순한 것이 어쩌면 아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일시적이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 어쩌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삶의 기본 철칙인 것이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을 가볍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에서 가장 나쁘다고 말하는 "자만"인 것이다. 단순한 것에 대한 실천이 내 삶의 질을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본임을 명심하고 살아야 되는데 쉽지 않다.
독서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독서를 시작할 때부터 철학책이나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같은 책을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을 읽고 싶다면 가장 본인이 읽기 쉬운 것부터 접근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도 문득 혼자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행 관련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으면서 독서가 시작됐다. 그때부터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갈망이 시작이었다. 그것이 점점 발전하여, 유럽의 미술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술 관력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하는 나라의 문학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세상을 통찰하는 힘은 결국 철학 종교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그런 종류의 책들을 하나둘씩 읽어 보게 되었다. 아직독서력이 깊지 않지만 철학이든 종교든 위대한 영혼들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우주와 신의 섭리가 존재하고 그것들이 이 거대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축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더 기본으로 해내야 할 일이 있다. 깊이 있게 독서하기 위해서 처음 해야 되는 일은,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 습관을 들이기 위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선별하여 읽는다면 습관 들이기가 수월 할 것이다. 그러면서 형편에 맞게 독서 시간을 조금씩 늘리다 보면 자신의 관심 분야와 연관된 다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그 다음 그것들을 찾아서 읽다 보면 독서의 깊이가 생기게 될 것이다.
영어도 매 한 가지다. 386세대인 나는 스피킹 위주의 영어 공부가 아니라 읽기 위주의 영어에 더 익숙해 있다. 어느 정도 내 관심 분야와 관련된 것들을 영어로 읽을 수준은 된다,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스피킹보다는 쉽게 느껴진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여행지에서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늘 속상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지만 잘 늘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좋아지리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꾸준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깨달은 것은 쉽고 간단한 영어 단어와 말을 알고 있다 착각하며 기본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말하는 것이 어려워 입으로 못 내뱉는 것이 아니라 하려는 말이 바로 생각이 안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본적인 영어 단어와 문장이 내 몸에 안착이 안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단어조차도 말하고자 하는 그 순간에 생각이 안 났던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면 쉬운 문장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여러 시도와 접근방법을 달리해서 공부해보다가. 이런 사실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에 선택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자이다. 지금은 유아용 만화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쉬운 것부터 체득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쉬워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기본에 충실해야 어려운 말도 소화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기본적인 동사와 문장을 접할 때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익히려 하고 또 쉽다고 그냥 넘겨버리지 않게 됐다.
이렇게 건강, 독서, 영어 공부뿐만 아니라 어떤 한 분야에 깊이 있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에 얼마나 충실하냐가 관건이다. 이것에 대한 중요성을 나이가 한참 들어 깨우친 나는 이제는 실천하고 있다.
건물이든 공부든 독서든 한 분야의 학문이든, 견고하게 위로 올리고 싶다면 그만큼 반대로 아래를 더 깊이 파야지, 비로소 안정감과 균형감이 생긴다. 더 밑으로 파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파지 않고 위로 높이 올라가려 한들 올라가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 버릴 것이다. 영어의 'U'는 'Under 아래로" 에도 쓰이고, 'Up 위로" 에도 쓰인다. 이 반대되는 두 단어에 공통 알파벳인 'U'을 가만히 보면, 글자 양 옆에 위로 서 있는 두 기둥을 중간에 깊게 들어간 오목한 부분이 지지해 주고 있다. 결국 아래로 내려가든 위로 올라 가든 지지해 주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고 익숙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하찮은 것이라 생각한 것들 중, 삶의 질을 깊이 있게 해주는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망각하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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