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오이디푸스 왕

Christi-Moon 2023. 4. 30. 14:43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하다. 사실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모른다. 오늘 여기서는 단지 내가 읽고 느낀 대로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탁의 예언대로, 친부를 죽이고, 자신을 낳아준 친모와  모르고 결혼하지만, 그 사실을 안 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자신의 나라 테바이를 떠난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틱한 사건과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동들이 그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른 결말이라는 스토리 구성은  이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쉽다.  실제로  대학시절  연극사 시간에 오이디푸스 번역본을 읽고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뭔가 수박 겉핧기로 이해하고 시험을 치른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작년 암트테르담 시립극단의  오이디푸스 공연 영상을 국립극장에서 보고, 이 극에 대해서 좀 달리 느끼게 되었고,  관람 후 바로 펭귄 클래식 영문본으로 오이디푸스를 다시 읽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접해 그런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전과 다르게 읽혔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주는 메시지가 상당하다는 생각에 새삼 놀라웠다.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죄를 회피하기 위한 행동과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자만심은  결과적으로 예기치 않게 좋지 않은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또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집착과 욕망  자만심이 뿌린 씨는 자라나 반드시 결과로 발화된다는 점,  이것들이 소포클레스가 전해주는 핵심 메시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Vasa Museum,Stocholm


오이디푸스 아버지  라이오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을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인 그릇된 행동, 그의 부인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자만심까지 인간이 가장 멀리해야 할 것들을 이 세 인물이 다 가지고 있다. 라이오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에 대한  저주의 예언이, 실현될까 두려워 전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른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는  미래의 상황에 대한 저주임에도 과거에 저지른 죄에 얽매여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 못한 아들에게 예언대로 죽임을 당한다.  라이오스가 신탁으로 받은 저주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행동하고 갓 태어난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저주가 빗나가지 않았을까?
 
오이디푸스 왕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보이지만 이오카스테의 집착과 욕망도 이 비극 이야기에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생각한다.  라이오스의 부인인 이오카스테는 왜 남편의 말을 거역하고 오이디푸스를 살려줬는가! 난 이 생각을 하면서 씁쓸했다 동양의 어머니나 서양의 어머니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남편 사랑을 뛰어넘는다. 주위를 보면  남편에 대한 집착보다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해 놔주지 못하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느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이 생기지 않는가? 이오카스테가 자신이 살려준 아들이 그립고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 기운으로 집착했으면 아들을 남편으로 맞이했겠는가? 얼마나 모성애를 넘어 집착의 기운이 강했으면 아들과 결혼하는 식으로 발현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집착이 강하면 파멸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 왕인 라이오스가 죽고 다시 오이디푸스 왕과 결혼하여 테바이의 왕비로서  왕권의 유지를 위해 혼신을 다한다. 이 또한 그녀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작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말려들어 희생당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 집착과 욕망 그리고 자만심까지 친부모가 지닌 에너지의 총 합의 결과가 오이디푸스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처음에 나도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동을 보고 라이오스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영문본으로 읽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코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어떻게 눈을 찌를 수 있는 그런 엄청난 행동을 했냐고, 그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행동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이 장면을 읽었을 때 오이디푸스가 두려움이 엄청 큰  인간이구나. 자신만만하게 테바이의 전염병을 해결할 때 하던 말과 행동과는 다른 반대의 이면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이유는, 죽어서 자살한 친모이며 동시에 부인인  이오카스테를  만나서  보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눈을 찔렀다고 대답했다. 굉장히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이디푸스도 내면의 두려움이  아버지 라이오스만큼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겁이 많은  오이디푸스에게 반대로 자만감도 강했기에, 자신의 친부를 오이디푸스 자신이 죽인다는 예언을 듣고 방황하는데, 그때 마침 길에서 시비가 붙어 죽인 사람이 아버지 라오스인 것이다. 그 후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에 이어 테바이의 왕이 된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이 테바이의 왕은 전염병이 돌자 이것은 외부에서 일어난 좋지 않은 행위들로부터 일어난 것으로만 판단하고 자신만만한 왕의 권위로 난국을 해결하고자 의욕적으로 덤빈다. 그러나 결국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테바이 왕이 되기 전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의 답이 이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관통선 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자신은 지혜롭게 이 답을 풀어 자신감, 더 나아가 자만심을 가졌을 뿐, 이 답이 주는 지혜의 본질을 통찰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 왕에서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에서, ‘서로가 서로를 낳는 것에 대한 답’ 은 ‘밤과 낮’, 이것이 말해주는 본질은  어둠과 밝음은 하나라는 것이다. 어두운 죄는 결국 밝혀질 것이며, 과한 것은 가벼운 쪽으로 덜어 내지고, 밤과 낮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씨앗이  자라나 결국 열매를 맺게 된다. 자신이 뿌린 씨앗의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다음 문제는 ‘네발로 기고 그다음 두발 그다음 세발인 것은‘. 무엇이냐 인데, 이 답은 인간이다. 즉 어린아이에서, 어른, 결국 지팡이를 짚는 노인이 되어 죽어간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영원한 것도 결국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죽음에 대해 우리는 망각하고 경거망동하며, 영원히 살 거 같은 착각은 자만심과 삶의 집착과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 스핑크스 문제의 본질이다.
언제 가는 누구나 맞이하는 이 죽음에 대해 숙고해 보면 이것이 있기에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절제하는 미덕을 지니고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삶에 발목을 잡아 흔들어 놓을 수 있기에 그런 생각의 집착에 벗어나야 한다는 경각심을 이 그리스 비극에서 가르쳐 주고 우리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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