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만의 <부덴브르크가의 사람들>을 다 읽고 <파우스트 박사>를 읽고 있는 중이다. <마의 산>처럼 책장이 빨리 넘겨지지는 않을 듯하다. 천천히 읽힐 뿐만 아니라 읽던 부분도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다. 거의 초반이지만 토마스 만은 누구보다도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서 티스토리에 조금씩 정리를 하면서 읽어나갈 예정이다. 오늘까지 읽은 파우스트 박사 3장 아드리안 레버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부분은 정말 압권이다. 아드리안 레버퀸의 아버지 요나탄은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 원소의 탐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비난받을 소지가 없자 않지만... 그의 연구가 예전 같으면 마법에 빠진 것으로 의심받았을 법한 일종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기 때문이다... 자연 자체가 기묘하게 마술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현상들을 낳고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을 부리며 반쯤 숨겨져 있으면서 이상야릇하게 불확실한 것을 가리키는 암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연과 관계 맺는 것이 무모하게 한도를 넘어서는 행위라고 보았을 법하다.
요나탄 레버퀸은 특히 자연에 대한 신비로운 경외감과 이것들을 탐구하는 남 다른 지적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 나비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위와 동화되어 제 모습을 보이지 않게 감추고, 반대로 눈에 잘 띄게 모습을 드러내어 역한 냄새를 풍겨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나비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나, 조개껍질에 새겨진 무늬를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라고 받아드려 그것을 관찰하고 소라의 껍질이 뼈대의 역할을 한다고 알려주는 장면은 어쩌면 앞으로 아드리안이 펼쳐낼 예술 세계의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매력적인 균형을 갖춘, 마치 어떤 종류의 소라는... 늘 서로 상반되는 관점이 작용했다. 외양이 화려한 그 피조물은 중세 시대에는 독약이나 마약을 담기에 적합한 용기로 알려져 있었다... 미사를 드릴 때는 성체와 성유물을 담는 상자로, 심지어 성찬용 잔으로 사용되었다. 독과 미, 독과 마술 그뿐 아니라 마술과 예배 의식 등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여기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예술의 세계도 이런 자연의 세계처럼 경이롭지만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분명함과 환상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요나탄은 틀림없이, 자연 이 그 자체의 힘으로 생겨났고 그 안에서 체계화된 언어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 자연의 언어가 어쩌면 음악의 악보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보 위의 음표는 하나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인터뷰에서 선율이 적어진 악보를 보는 자체만으로도 그 음악이 어떤 느낌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성에의 겉모양은 식물의 그것 못지않게 복잡한 재료들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 내가 요나탄 레버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는 생물계와 이른바 무생물계가 하나라는 사실에 몰두했던 것이다... 두 영역 사이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후자, 즉 무생물계를 잘못 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자가 무생물을 모델로 해서는 연구할 수 없는 그런 순수 자연의 본질적인 능력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현상을 이분법으로 분리시켜 사고하기보다는, 동일한 현상 안에서도 상반되는 관점이 공존하는 세계를 알게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자연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 그 이상을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자연을 모방한 것이 예술의 세계라고 말해준다. 소설 초반부, 요나탄 레베퀸이 지닌 지적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은 자신의 아들 아드리안이 앞으로 펼쳐낼 음악의 세계에 그 기운이 미쳤음을 소설 속에서 전해주고 있다. 쇼펜하우가 의지의 표상에서 말한 대로 요나탄의 의지는 자신의 아들 아드라안과, 아들의 친구이며 작품 속 화자인 제레누스 차이트블룸에게 전해진 것이다.
'독서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0) | 2023.06.06 |
---|---|
파우스트 박사2 (feat. 생각의 탄생) (0) | 2023.06.04 |
그림이 보인다 (0) | 2023.05.31 |
인생이 그림 같다. (0) | 2023.05.27 |
돈키호테 2 (1) | 2023.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