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천재 음악가 아드리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음악 교육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단 그의 아버지 요나탄 레버퀸은 자식들의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미헬젠 선생님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한다. 이 미헬젠은 아드리안이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천재 운운하면서 반드시 김나지움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아드리안은 김나지움에 입학하기 위해 카이저스아셰른에 있는 아드리안의 숙부 레버퀸의 집으로 오게 된다. 레버퀸 숙부는 바이올린 제작자였으며 그의 집에는 그 당시 명품 악기를 모아놓은 창고가 있었다. 그리고 숙부는 아드리안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며 가끔 집에서 실내악 연주를 열었다. 그 연주회에서 성당 오르간 연주자이자 아드리안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말 더듬이 벤델 크레추마어 선생을 만났다. 이 크레추마어의 선생과 관련된 내용은 파우스트 박사 1부 8장 9장에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런음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음조도 갖고 있지 않아. 모든 것은 관계야. 그 관계가 서로 얽혀서 질서가 생겨나는 거지"라고 그는 설명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해. 그 관계를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애매성'이라고 할 수 있지... 음악의 체계는 애매하다는 사실이야. 아무 음이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야. 반음 올리거나 반음 내린 것으로 말이야. 그리고 만일 영리한 사람이라면 그런 애매함을 유익하게 써먹을 수가 있어"...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놀라울 정도를 넘어서 감동했을 뿐 아니라 충격까지 받았다.
아드리안이 말한 음악과 관련된 애기는 아드리안이 말한 '관계'가 음악의 얘기를 넘어서 이 글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아드리안의 예술 세계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그야말로 창조된 하나의 작품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드리안의 부모님, 집에서 일했던 하인들, 레버퀸 숙부, 선생님들, 심지어 집에서 기르던 동물까지, 아드리안이 맺어진 관계에 대한 것들이 아드리안이라는 천재음악가를 만든 것이다. 이 관계에 대한 글의 내용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런 관계에 의미로 비추어 봤을 때, 벤델 크레추마어 음악 선생님에 대한 내용이 다른 챕터보다 길게 언급된 것으로 봐서 아드리안의 관계 속에서도 이 선생님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둥그런 두상에 짧게 다듬은 콧수염, 때로는 생각에 잠긴 듯하고...별로 눈에 띄지 않은 외모의 이 땅딸막한 사내는 카이저스아셰른의 정신 내지 문화생활을 위해서 하늘이 내려 준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의 오르간 연주 솜씨는 노련하고 뛰어났지만, 그 일대에서 그의 진가를 알아볼 안목이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평범한데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크레추마어 음악 선생은 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런 보석 같은 스승은 흔하지 않지만, 자신의 능력과 재능이 아드리안에 그 영향을 미친것이다. 아드리안은 크레마추어라는 보석의 가치를 취한 것이다. 보석의 가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알아본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 더듬이 음악 선생님의 말 더듬 강의도 어쩌면 아드리안의 음악에 한몫을 했을 거라고 짐작이 간다. 크레마추어가 복지회관에서 한 강연회 때 아드리안은 음악에서 요구되는 박자 리듬감 악센트등 그리고 이 말을 더듬으면서 열정적인 강연의 끊을 이어가는 그 힘, 이런 것들이 아드리안의 음악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강연회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실패작이었다...지방 사람들이 원래 강연이란 걸 좋아하지 않았고... 더듬거리는 말씨가 무척 듣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그는 풍부하고 집중적인 사고력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정말 열성을 다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간혹 듣는 사람이 그의 고통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춤추듯이 흘러가기도 했다... 치찰음에 막혀서 입을 크게 벌리고 마치 증기 기관차가 증기를 내뿜는 듯한 요란한 소리로 발음하거나 혹은 순음과 씨름하느라 두 볼을 불룩하게 하고서 입술은 소리 없이 폭발하는 듯한 단음적의 속사포를 쏘아 대곤 했다.
크레추마어 선생의 풍부하고 깊은 음악적 지식 뿐만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삶의 원칙 또한 훌륭하다. 진정한 스승의 자세는 스승 자체의 삶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크레추마어 선생은 그런 자신만의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가 있기에 독일의 작은 시골 도시에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소수에게 그런 열정적인 음악 강연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벤델 크레추마어가 영어로 거듭 밝힌 자신의 원칙은 타인의 관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심이 중요하며 따라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저절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관심을 확실하게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가 어떤 일에 확고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게 관심을 확신시켜서 전에 없던 예상 밖의 관심을 창출하게 되므로, 그것은 기존의 관심에 영합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크레추마어가 지닌 삶의 확신이, 그대로 아드리안에게 전해진 것이다. 한 사람이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힘을 이 음악선생은 확고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방송인가 어디서 진중권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친누나가 진중권이 유학시절 공부하면서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남과 다른 길을 가려고 고민할 때 해준 말이라고 한다. "남들이 처음에 미친 짓을 한다고 손가락 질 해도, 10년 이상 그 일을 지속한다면 남들이 인정해준다고..."
나는 문학을 읽는 것이 좋다. 이 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내가 이해한 것을 어떤 식으로 공유하고 싶다. 그것에 대한 관심이 티스토리에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문학을 읽는 것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접급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외국 문학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전달력이 떨어져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또 자기 계발서나 교양서적 보다 특히 독서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이 문학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조차도 문학을 읽어내는 사람은 드물지 않나 싶다. 보통은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는 것 같다. 그런데 진정한 독서의 힘은 문학을 읽어낼 때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독서력과 문해력이 견고해지려면 멀었지만 아드리안에게 벤델 크레추마어 같은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면 나의 스승은 문학을 쓴 저자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토마스 만은 위대한 스승이다. 토마스 만 같은 스승을 삶 속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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