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아드리안이 천재 음악가의 성장에 미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주위 환경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오늘은 < 파우스트 박사> 1부의 12장, 13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드리안은 신학을 전공으로 택한다. 그가 옮긴 할레라는 곳은 신학 안에서의 전통과 문학 그리고 교육학의 전통들이 혼재되어 있는 도시이며, 그가 다닌 할레 대학은 그 당시 종교적인 논쟁으로 들끓고 있었다. 여기서 아드리안은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그가 왜 이 전공을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은 아마도 이 소설의 중반부나 되어서 풀리지 않을까 싶다. 12장에서 14장에 언급되는 이야기들은 크리스천이 않은 나로서는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학의 위상이 절대적인 가치로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신학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종교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결코 낯설게 느낀 적이 없는 신앙심이란 종파에 연루된 현실 종교와는 다른 어떤 것이다. 인간의 감성이 무한한 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신앙이나 예술 혹은 자유로운 명상의 영역에 양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심지어는 우주학, 천문물리학, 이론물리학 등이 피조물을 탐구하는데 완전히 종교적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학문의 영역에라도 양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 심성을 따로 정신과학으로 분리하여 교리 체계를 구축하고 그 신봉자들이 문장의 술어 하나 때문에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을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학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 시대의 학문 조류에 의해 규정되어 왔으며 언제나 그 시대의 아들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시대에 맞게 달리 해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종교학자 '오강남'교수가 하시는 말씀이, 기독교는 역사가 진보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독교는 멈춰져 있어서 문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위에 글에서 말한 것처럼 진정한 신앙심은 다른 종파, 다른 종교로 나누어 분리시키는, 즉 지금 세상에서 말하는 종교에서는 진정한 신앙심이 싹틀 수 있다고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교이지만 주위에 기독교 신도들이 불교를 믿는 신도들에게 더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른 종교를 폄하하고 비방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반항심과 혐오감이 일 때가 있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자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되고 그러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말하면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하나님은 어떤 실체로서, 우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절대적으로 그 말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우상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는 다른 종교의 성인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욕망' '집착' 자만'으로 인해 얻어지는 부와 명예 권력 권위 이런 것을,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고 우상숭배 하듯이 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나는 들린다.
13장은 논점은 악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이 과연 악마까지 만들었을까에 대한 논란이다. 나는 신이 악마까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이 악마가 내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신학이란 본성상 악마론으로 기울기 쉬우면 특정 상황에서도 언제라도 악마론으로 기울게 마련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도 극악무도한 것을 신성한 것과 함께 태어난 필연적인 보완물이라고 설명했으며 신성한 것을 끊임없는 악마적인 유혹, 거의 저항할 수 없는 신성 모독적인 도발이라고 설명했다... 악과 악인조차도 신의 신성한 실존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온 것이요. 불가피한 부속물이었다. 마치 악덕이 그 자체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덕을 더럽힘으로써 생겨난 것이고 덕이 없다면 악덕은 그 뿌리를 잃게 될 거라는 식이었다. 바꿔 말하면 악덕은 창조 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는 죄를 지을 가능성, 즉 '자유'를 누리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악과 선이 하나라는 이야기이다. 선이라는 것은 악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지 악이 없다면 선이라는 개념만으로, 선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이다. 즉 신의 의지의 완전함이란 그야말로 악을 포함은 선, 즉 선과 악이 상호의존하고 공존할 때 비로소 신의 뜻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을 허용한 곳이고 하느님은 완전하기 때문에...모든 존재의 상호 강화라는 의미에서 선이 있음으로 해서 악은 더 악하고 악이 있음으로 해서 선은 더욱 선한 것이 된다. 사실 선이 없다면 악은 도대체가 악이 아닐 것이요 악이 없다면 선 또한 전혀 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 악의 기능이 선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며, 선은 안과 비교될 때 비로소 그만큼 더 좋은 것으로 입증되고 찬양될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신학에서 논쟁이 되는 악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만 탐욕 욕망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악마이자 악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자만 탐욕 욕망 집착이 강하면 판단이 흐려지고 과하면 하나의 상황을 파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자만 탐욕 욕망 집착은 사람의 감정이다. 12장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에 관한 해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감정들은 행동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감정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악의 힘이 세지고 그리고 그것이 세질수록 결국 선은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악의 힘이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신이 나서서 선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이 나서기 위해서는 악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13장의 클뢰프가이셀과 베르벨의 사랑 얘기에서 말하는 악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베르벨은 자신의 연인인 쿨뢰프가이셀이 다른 여자에게 남성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그가 모르게 등에다 악마의 묘약을 바른다. 쿨뢰프가이젤에 대한 베르벨의 집착은 남자 구실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또 한편으로 쿨뢰프가이젤은 자신이 지닌 남성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으로 베르벨 아닌 다른 여자에게 접근라고 남성성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두 남녀 둘 다 자신들의 집착과 욕마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로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다. 결국 베르벨과 쿨뢰프가이젤의 욕망과 집착은 악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악은 파괴시키고 신의 힘을 빌려 선이 나서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베르벨은 마녀로 몰려 죽게 된다. 사람들은 베르벨을 죽이는 것이 신이 행한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13장에 핵심은 악을 행한 베르벨이 자신이 지닌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녀를 처형시키는 것이 신이 말하는 선을 실천한 것인가? 그 선이라는 것은 단지 그 사회가 붙인 말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단지 선과 악은 종교에서 붙인 용어에 불과할 뿐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악마의 묘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매력을 통해서, 그리고 상대를 매혹시키려는 의지를 통해서였다. 그런 의지로써 그녀는 그를 사로잡았고, 다른 여자들의 유혹으로부터 그를 지켜낸 것이다. 비록 남자 입장에서 사태를 관찰할 때 더 분명하고 정당한 판단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사랑 때문에 오만한 생각에 빠져들어서 어리석게도 자신이 마술에 걸려든 거라고 생각했겠지, 마술 연고에 대한 그녀의 믿음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런 수호력이 강화되었고 총각의 본성에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인정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또한 이런 관점은 영적인 것에 내재하는 어떤 자연적인 기적의 힘, 즉 유기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결정하고 변화시키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12장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질료와 형상에 관한 이론과 일맥 상통한다. 의지가 강하면 표상으로 드러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맥락과 닿아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현상의 결과에는 그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 두고 신학에서 악과 선은 결국 하나라고 논쟁한다. 크리스챤은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은총과 그 분의 영적인 힘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끔 했다고 믿는다. 우리의 주인공 아드리안은 자신의 예술에 어떤 욕망의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게 될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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