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파우스트 박사6 (feat.14장)

Christi-Moon 2023. 6. 14. 19:34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의 13장 까지는 아드리안의 주변 사람과 환경과 같은 아드리안의 성장배경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14장부터는 아드리안의 직접적인 생각들이 전개된다 아드리안 레버퀸이 이 할레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면서 함께한 학생들이 지닌 시각과 생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특히 14장에서는 ' 빈프린트'라는 기독교 학생모임에 참여한 아드리안이 신학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에서 나눈 대화들을 살펴보면 아드리안은 그들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들어오는 모습은 아주 특이했다...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심각하게 찌푸린 표정으로... 피아노에 다가앉아서는 세차게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오는 도중에 생각해 두었던 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피아노를 향해 달려드는 이런 행동에는 휴식이나 피난처를 찾는 듯한 심정이 엿보였다... 마치 그 방을 채운 사람들이 그를 성가시게 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가 속해 있는 낯선 땅에서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피난처를 찾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본격적으로 아드라 안 레버퀸이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빈 프린트 모임 소속 학생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 토론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다른 학생들이 이상주의적 경향이 있는 반면 아드리안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데 특히  다른 학생들처럼  편협하고 지엽적이어서 생각이 좁고 뭔가 젊은 혈기에 도취된 생각들을 지니고 있다면,  아드리안은 긴 흐름 속에서 하나의 현상을 파악하면서 그 현상이 드러나기까지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살피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것이 천재와 보통사람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이췰린은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는 젊은이가 젊음을 논한다는 것은 정말 한심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탐구하는 생활양식은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일정한 형식을 잃고 해체되면,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만이 참된 실존을 갖는다는 것이다... 후프마이어와 샤펠러가 반론을 제기했고 토이트레번 역시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삶의 감각이라고 일컬어지고 자의식과 같은 그 무엇이 있어서, 만일 그로 인해 삶의 형식이 해체되기라도 한다면 고양된 삶은 도무지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레버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런 '인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젊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육에 의해서야. 다시 말해 나이 든 사람들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지. 어린이를 존중하는 세기라 일컬어지고 여성 해방이 창안되기도 한 시대, 독립적인 삶의 형식을 열정적으로 긍정하는 시대, 대체로 매우 불안한 이 시대에 어느 날 갑자기 젊은이들도 인정받게 된 것이지."

 

다른 학생들이 말한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 읽는 나로서는 몇 번씩 읽어야 했다. 느낌상 도이췰린과 그의 친구들은 젊은이라는 존재가 어떤 특권이 있다는 의견과 혹은 젊은이는 특별하지 않고  인간 자체로 접근해야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뭔가 존재론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이들과 좀 다르다.  젊은이라는 것은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나이 든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젊음이 어떤 정신적인 감각에서 생겨났다기보다는  시대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구별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드리안은 미래에 천재 음악가가 될 인물이라면 뭔가 이상적인 것을 추구할 것 같은데 반대로 하나의 현상을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간파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드리안이 젊은이들에 관해서도 마치 자신은 거기에 속하지 않은 듯이 오만하게 말하고 젊은이들 틈에 섞여서 순응할 줄 모른다고 했다. 아드리안은 도대체 겸손을 모르게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각성된 삶의 감각이라고 받아넘겼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젊은이는 시민적으로 성숙한 어른보다 자연과 더 가까운 관계에 있고 이를테면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자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에서 우리는 출발했어.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 젊은이가 특별히 자연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오히려 젊은이들은 자연에 대해 훨씬 더 수줍어하고 냉담하고 본질적으로 낯설어하지. 사름은 나이를 먹어야 비로소 자신의 자연적인 요소에 익숙해지고, 자연에 대해 서서히 안정감을 얻게 되지. 젊은이야말로 어느 정도 성숙한 젊은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자연에 경악하고 자연을 경멸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자연이란 무엇인가?.. 젊은이는 나이가 들어 안정된 사람보다는 자연을 보는 시야가 훨씬 좁아. 젊은이가 자연을 보고 즐거워서 고양되는 일은 거의 드물지. 젊은이는 내향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기피한다네.

 



13장의 이 부분을 읽을 때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나라의 민주화와, 미 제국주의 반대, 남북통일 문제 등으로 최루탄 냄새 좀 맡아야 했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동독 출신 극작가, 브레히트의 서적조차도 대학가에 사람 안 다니는 특별한 서점에서만 판매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은 운동권 학생들이었고 그런 책들을 토론하는 모임도 있었다. 그 당시 모교의 학생  회장이 전대협(전국대학 연합협회) 회장이었고, 전 정권인 문재인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 얼굴이 잘생겨서 여학생들이 짝사랑을 많이 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런데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라고 앞장서서 데모했던 그였는데, 지금 그의 따님은 미국 부자들이 다니는 예술대학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아드리안의 친구처럼 대학시절 전대협 회장님도 스마트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였기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세상을 내 힘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을 것이다.  현실을 개혁하고 싶은 이상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보면 젊었을 때 지녔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젊은 시절을 지나 본 사람들은 그 전대협 회장의 과거행적을 이해하고 남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드리안의 친구들은 이 전대협 회장의 마인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젊은이들 생각하는 자연에 대해서도 아드리안은 철저히 현실주의자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한 집단의 시스템에 얽매이기 전이므로 자연을 닮아 아직 순수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이 든 사람들처럼 자연환경이 주는 안정감을 좋다고 느낀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 아드리안의 관점이다. 내 경우도 젊어을 때는 자연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젊었을 때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틈도 없었고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아드리안의 생각이 수긍이 가고 설득력이 있다.  하나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난 대단한 것인지를 아드리안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 상황을 이해하고 명확히 판단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고 재능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드리안은 예술가 기질을 앞세워 '낭만적인 허풍' 부리는 것을 혐오했고, 예술적 영감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시하고 경멸했으며,되도록 영감보다는 ‘착상'이라는 말로 대신했다는 이야기가 4장에 나온다. 14장에서도 젊음이 어떤 특권인 것 마냥 떠드는 친구들 말을 들으며 아드리안은  뜬 구름 잡는 이상주의적 발언이라고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15장을 보면 아드리안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 다음 글에 정리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