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에서는 아드리안의 본격적인 음악에 대한 자신의 성찰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드리안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잘 안다. 자신을 성찰하는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것을 끌어주는 스승인 벤델 크레추마어가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도 감동적이다.
아드리안은 음악에 대해 작곡가의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뭔가 비결을 터득한 사람의 안목이지요. 문외한이나 적당히 즐기는 사람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모티프들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고, 문답식 문제를 풀 듯이 짧은 악절의 편성을 금방 척척 풀어내고, 전체와 내적 구조를 파악하는 그의 재능을 보면서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 친구가 아직 직접 작곡은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 친구가 아직 직접 작곡을 하지 않고 창작이 충동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습작이나 하는 것까지도 장점이 됩니다. 시시한 아류 음악은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지킨다는 뜻이니까요... 스승은 아드리안보다 더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거듭 희망했던 터였다.
어느 한 사람의 재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정확하게 알아보고 그것을 끌어주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타인이 나를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타인의 객관적 판단이, 나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성향이나 본질을 깨우치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능력은 선생을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질이라 생각한다. 가르치는 학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잠재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선생님인 것이다. 영국 영화 <빌리 엘리엇>을 보면 탄광촌 동네에서 일하는 발레 선생님이 빌리 재능을 알아보고 런던이라는 더 큰 세상으로 자신의 제자를 보낸다. 빌리의 재능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학생의 자질을 알아보는 것도 선생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어쩌면 명성과 권위를 지닌 선생이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데 일조한 세상의 선생님들이 많을 것이다. 문학을 비롯해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런 안 보이는 세상을 드러내서 밝혀주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드리안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크레추마어 선생님에게 고백하는 내용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도 머리가 좋아야 되지 않나 싶다. 아드리안 스스로가 판단하는 자신의 성향 기질 생각들 모두가 작곡가가 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들이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꼼꼼하고 자신의 외부적 요인보다는 내부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고 냉철하며 습득력이 빠르고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미치도록 못 견뎌하며, 편협적인 학문에 매몰되는 것을 혐오하고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자만심이 생긴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신에게 회개할 수 있는 자기 성찰력이 강하다.
물론 저는 신학에 몰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가장 고귀한 학문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저 자신이 겸손해지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게 규율을 부과하며, 저의 오만하고 차가운 성격을 다스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컨대 회개하는 심정으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아드리안의 눈은 보이는 세상을 읽는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읽어내는 힘을 가진 마음의 눈을 가졌다. 또 어떤 현상에 대해 한쪽 방향으로 사고하거나 대중이 그 현상에 대해서 대다수 의견으로 피력한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비판하고 해석하되 명확하고 예리하게 판단한다. 아드리안의 예술관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의 것을 지니고 있다.
예술은 경직된 형식이나 관습, 전통, 학습, 기교, 작법 따위를 훨씬 초월해 있는 어떤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요소가 상당히 섞여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술적 감수성과는 관계없는 그런 취향이 때로는 참된 예술 작품을 지탱하는 뼈대가 되기도 하고 작품의 단단한 실체가 되기도 해서 이제는 공통의 문화적 전통이 되었고 미를 창조하기 위한 관습처럼 자리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 예감으로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감하는 능력 역시 제 천성의 일부입니다만, 만일 제가 그런 관습을 접하면 아마 수줍어하면서 얼굴이 뜨거워지고 그로 인해 나른해지면서 두통이 생길 것 같습니다.
이런 아드리안의 고뇌에 대한 의견을 크레추마어 선생님은 전적으로 수용하고, 아드리안의 모든 체질과 성향, 기질, 생각,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은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는데 안성맞춤이라고 조언해 준다. 아드리안의 재능은 무한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는 길을 가는 젊은이로서, 두려움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야말로 옆에 스승 혹은 멘토가 있어 삶의 확신을 심어준다면 한 인간의 재능은 빛을 발휘할 것이다. 크레추마어 선생이나 앞에 언급한 <빌리 엘리엇>의 시골 선생님이나 가깝게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를 보면,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멘토 스스로, 삶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자기반성의 세월이 없었다면 이런 확신 또한 제자에게 조언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멘토들이 권련과 명성을 지녔다면 이런 열정적인 가르침이 가능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권력과 명성을 중시하는 멘토들은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가 더 필요할 것이라 판단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아드리안이 크레추마어 선생님의 음악적 능력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세상의 성장은 이런 멘토들의 생각을 실천하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창조하는 힘을 길러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고 또 그 사람은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창조하는 힘을 길러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조한다. 이런 순환의 흐름 안에서 세상은 변화되는 것이다. 그 흐름 속에 좀 더 창의적의 고 과거의 것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다. 현격한 변화는 분명 진통을 크게 격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앞으로 아드리안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해 갈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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