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장기간 스페인 여행을 결정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프라도 미술관 방문하는 것이었다. 1년 미술관 무제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해 20일 정도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프라도 미술관을 9번 정도 다녀왔다. 유럽의 대도시 국립 미술관은 대체로 넓기에 첫 관람 하는 날, 길치 이방인은 늘 미술관에서 화장실을 찾거나 엘리베이터 서는 곳 등을 찾느라 길을 헤매다가 관람시관을 뺏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라도 미술관 여러 번 방문하면서 좋은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기회가 주어져 감사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은, 그 당시 화가들이 선망하는 직위였던 궁정화가 직책을 가진 벨라스케스 (Don Diego Rodriguez da Silva y Velasquez 1599-1660) <시녀들>이다. 작품이 전신된 룸은 이 걸작을 보기 위해 늘 문전성시이다. 그래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왜 그토록 대단한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벨라스케스가 그 당시 궁정화가였다면 상당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살았을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 사실 딴 애기이지만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을 다녀와서 화가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의 매력이 반감되었다. 그만의 독특한 화법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게 펼친 화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로야는 살면서 부유하고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소로야 작품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켰다. 소로야는 에스파냐 화가일 뿐이다. 벨라스케스도 소로야만큼 살아생전 큰 부를 지니고 살았겠지만 소로야와는 다르다. 무엇이 벨라스케스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불리게 했을까. 그리고 그의 작품 <시녀들>이 서양 미술계에서 걸작 중에 걸작으로 자리매김하여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정리해 봤다. 이 글의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과 상상일 뿐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작품 속 주인공은 누구일까? 물론 제목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시녀들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틀리지 않다. 그런데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 작품 속 중앙부에 위치한 공주, 시녀들, 왼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벨라스케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혼선이 생긴다. 사실 화가, 왕부부, 시녀들보다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중앙에 거 있는 마가레타 공주이다. 그런데 뭔가 조종받는 인형 같은 느낌으로 공주 양 옆, 두 하녀의 기운에 공주의 기운이 반감된다.
벨라스케스는 통념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의 형태를 벗어난 시도를 한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진정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작가는 관람자에게 던져주며 여러 가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통해 그림을 오래 바라볼 수 있도록 붙잡아 놓는다. 즉 하나의 화폭에서 동시에 벌어진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벨라스케스의 재치가 번득인다고 할까. 왕과 왕비를 그린 고전 작품들 중에 그들이 주인공이 아닌 미술작품이 그전에 과연 있었을까. 실제로 힘과 권력을 지닌 왕과 왕비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단지 왕이라는 상징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무늬만 왕과 왕비 일뿐. 그렇다면 왜 이런 시도를 벨라스케스는 한 것일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이번에는 작품 중앙에 그려진 마카레타 공주와 시녀들을 보자. 마가레타 공주에게 시녀들이 양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 공주는 화려한 드레스 안에서 인형처럼 서있다. 이 어여쁜 인형에게 대하는 시녀들의 행동과 표정을 살펴보면 화가의 예리한 구석을 엿볼 수 있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후배 화가 피카소가 <시녀들>을 보고 연작으로 그린 작품들이,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는 마가레타 공주와 양쪽 두 시녀들을 주제로 여러 편의 그림을 그렸다. 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니 더 잘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피카소가 보는 통찰은 이 두 시녀의 서로 다른 행동과 표정에서 보여주는 대비를 시각화시켰다. 왼쪽 시녀는 마가레타 공주에게 적극적인 모습으로 뭔가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시녀는 표정이 어둡고 어떤 상념에 빠져 있다. 피카소가 공주를 사이에 놓고 눈에 드러나지 않은 두 시녀들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후배 화가는 선배 화가의 걸작을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면밀히 들여다봤을 것이다. 벨라스케스가 얼마나 남다른 화가인지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위대한지 피카소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화가로서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작품을 그리기도 했겠지만 화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후대에 전해질 것이고, 그것이 어떤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통찰하고 있었던 화가였던 것 같다. <시녀들>을 보고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화가의 의도 일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라는...) 화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세상을 작품 속에 구현해 낸 것이다. 왕과 왕비가 궁정의 주인공이지만 그 권력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시녀들, 권력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화폭에 그릴 수 있는 능력 있는 궁정화가, 이들 모두궁정 식구이며 드러나지 않지만 왕족 못지않게 그들 또한 힘을 지닌 주인공들이라고 화가는 말하고 싶었을 꺼라 느껴진다. 벨라스케스는 어쩌면 자신을 주인공으로 그렸을지도 모른다. 왕과 왕비라는 사람들은 작은 거울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공주는 인형으로 그리면서 작품 속 화가 자신은 여유와 품위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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