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20

환상의 빛 (feat.욕망에 대한 환상)

영화 은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하고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본 후 바로 원작 소설을 사서 읽어보았다. 여 주인공 유미코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담담한 서간문 형식의 소설이었다. 영화도 원작과 다르지 않게 보는 내내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영화를 볼 때보다 소설이 더 구체적으로 내용이 다가오긴 했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고레에다 감독은 시각적 영상을 통해 전달해 주는 명장면이 있었다. 달리는 기차가 오는 신호를 표해주는 차단봉을 무시하고 훔친 자전거를 탄 이쿠오가 기차가 지나가는 옆에서 달리는 기차와 경쟁하듯 자전거 페달을 밟는 장면이다. 이쿠오는 더 전진하지 않고 오던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영화 기록 2024.05.26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feat. 데이비드 봄의 "On Dialogue")

"인간은 생각할 때 자유롭게 생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사용하여 판에 박힌 틀과 고정틀에 들어있는 생각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설 에 나오는 토마스 만의 통찰이다. 이 통찰은 디팩 초프라, 데이비드 봄, 크리슈나무르티가 가장 핵심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이 알고 보면 사실이 아니고 이 사실이야 말로 사실을 방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감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영화 에서 괴물은 바로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편견과 선입관이 얼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실체가 없어 파괴력 강한 괴물임을 미나토와 요리, 두 어린 소년의 순수하고 마음 아픈 사..

영화 기록 2024.05.19

미카엘 하네케 <피아니스트> (feat. 토마스 만)

미카엘 하네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하나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과 어딘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 둘의 공통점은 독일 출신이라는 것 외에도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을 통찰하는 대단한 능력자들이며, 그 두 대가의 영상과 글들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는 폭발적이나 그 에너지가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는 것 또한 두 사람의 매력이다. 드라마 구성이 논리적이고 빈틈없이 짜 맞춰져 있는 느낌을 받지만 반대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이 두 대가는 무의식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재생과 반복되는 패턴의 연속적인 삶을 알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 두 사람 모두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지닌 따뜻..

영화 기록 2024.02.11

미카엘 하네케 <하얀 리본> (feat. 폭력성)

미카엘 하네케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은 62회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 67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22회 유러피안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등을 수상한 2009년 작품이다. 독일의 시골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3년,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시작은, 예전 이 마을에서 일했던 선생님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준다. 이 마을 의사가 자신의 집 앞에 누군가 설치해 놓은 줄에 걸려 다치는 낙마 사고를 시작으로 이 고요한 마을에 원인 모를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드러난 하나의 현상들이고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차츰 밝혀진다. 시골의..

영화 기록 2024.02.03

영화 <해피엔드> (feat. 미카엘 하네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우리나라 개봉작 중 가장 최근 영화인 는 프랑스에서 큰 기업을 소유한 '로랑'가의 가족 이야기이다. 80살 노장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 수는 그의 나이에 비해 많지 않다. 45살에 첫 장편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전에는 희곡과 텔레비전 대본을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그의 작품을 다 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네이버 평점은 그야말로 형편없지만 그 평점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더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유럽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 좀 더 집중해서 봐야 하는 부담감이 요구된다. 특히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의 힘이 필요하고 무의식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인간의 ..

영화 기록 2024.01.21

영화 <그녀에게> (feat. 인연과 인과의 삶)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작품 는 독특한 사랑 영화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시기가 를 영화관에서 관람하고 얼마 안 돼서 를 보게 됐다. 두 영화 모두 사랑 이야기이지만 접근방식이 다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유럽 영화의 차이 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는 여주인공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성공하고 난 후 헤어졌던 연인과 재회한다. 사랑의 추억을 서로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각자의 길을 간다.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는 작품 속 음악이 로맨틱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관객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에 반해 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라기보다는 두 연인들의 불완전한 사랑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관람자로 하여금 관찰자적 입장에서 사랑 이야기에..

영화 기록 2024.01.01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 은 3년 전쯤 본 영화이지만 어제 다시 한번 보았다. 역시 미카엘 하네케 작품은 문학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영화의 깊이와 내공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특히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자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을 봐서 필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을 보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집중력을 가지고 보아야 이해가 되는데, 작품의 연결성이 사슬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처음 무심코 몰라서 장면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초반부터 보여지는 배우 표정의 섬세함은 후반부 극적 반전에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이미 영상 속에 담겨 있다. 이 영화로 미카엘 하네케는 2005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

영화 기록 2023.09.02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게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여러 편 보니 처음 봤을 때 보다 그의 작품 세계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이해가 잘 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 제작한 이 보다는 뒤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억압과 폭력성이, 성인이 된 후 결국은 폭력의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으로 이어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서 파울과 피터가 낀 하얀 장갑은 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한 폭력성의 상징이며, 가해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 폭력에 대한 억압을 분출해 자신도 폭력적인 인물이 되는 하나의 표식으로 보인다. 게오르그 가족은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자동차에 요트를 싣고 가는 중이다. 함께 휴가를 즐길 이웃인 프레도, 에바 부..

영화 기록 2023.07.10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중에 한명이다. 독일 뮌헨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 전공을 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의 전공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 대부분은 철학적 사유가 요구되고 내면 심리에 흐르는 무의식을 과감하게 드러내서 잔인한게 묘사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와 의 주제는 어렸을때 받은 인간의 억압과 폭력은 어떤식으로든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인간에게 발현되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그 실체를 낫낫이 드러내서 보여준다. 영화 의 두 주인공인 노부부 안느와 조르주는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부부사이다. 그런데 과거 피아니스트였던 안나는 신체 마비증상이 오고 더 이상 누구의 도움없이는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된다. 결국 남편 조르주는 안느를..

영화 기록 2023.06.05

영화 <가장 따듯한 색 블루>

영화 속 여 주인공은 왕성한 식욕을 지니고 있고,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18살. 이름은 아델이다. 영화 초반 그녀는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방황한다. 그리고 그 욕구는 그녀의 왕성한 식욕으로 엿볼수 있다. 그녀에게 음식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넘어 그녀가 지닌 성에 대한 욕구 해소의 수단이 된다. 뭔가 먹어도 먹어도 부족함이 느껴진다. 이런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되는 또 다른 여주인공 엠마는 화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쌓고 성공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반대의 성향을 지닌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려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델과 화가로서의 야망이 큰 엠마 이 둘 사이에 차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엠마는 현재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아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고, 아델에게 만..

영화 기록 2023.04.27